낭독은 묵독 중심의 독서방법과 디지털 위주의 일상생활에서 잃어버린 집중력 회복하기 위한 대안 독서로,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뇌를 길들이기 위한 좋은 독서방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대세인 스피치를 잘하기 위해서도 '소리 내어 읽는 낭독 훈련'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낭독은 자신감을 키워주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우지은 아나운서는 책 <시크릿 스피치 21>에서 말합니다. "소리 내어 읽어라. 스피치, 누구나 잘할 수 있다."라고요. 즉 낭독으로 우리 자신의 진성도 찾을 수 있고, 생명력을 불어넣은 스피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낭독은 무엇보다도 더 명확한 전달력을 필요로 하는 북 튜버, 오디오 클립과 팟빵을 운영하는 팟캐스터, 오디오북 내레이터, 시인들의 낭독회로부터 요즘 새롭게 유행하는 낭독극, 낭독 뮤지컬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낭독이란 무엇일까요?
통상적으로 낭독의 사전적 의미는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낭독은 단순히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아니라 먼저 ‘눈’으로 보고, ‘마음’을 담아 텍스트를 체화하고 난 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이었습니다. 글이 나의 말이 되어야 청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낭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낭독의 시작은 한글 소설이 유행하던 18세기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분의 고하 , 남녀, 연령을 막론하고 소설을 즐기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이치에 어긋나고 해를 끼치는 패설로 여겨 문제를 일으키는 소설들을 수거해서 불태워버리기도 한 정조 왕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돈을 받고 책을 대여해 주는 ‘세책업(오늘날의 도서대여점)’이 늘어났는데, 그들은 긴 소설을 여러 책으로 분할하여 연속 결제를 유도하기도 했고, 담보물을 받고 고가의 소설책을 대여해 주며 돈을 벌었습니다. 문제는 담보물까지 주면서 고가로 빌린 책이 파손되거나 분실되면 턱없이 높은 벌금을 물어내야 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부녀자들은 귀중품을 팔고 빚을 내면서까지 소설을 빌려 보았고, 그 소설은 왕실 여성이나 궁녀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가산 탕진자가 생기고 집안이 기울기도 하는 등의 사회적 문제도 대두되었지만 소설은 대중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 사회 현상이자 문화생활이었습니다.
소설이 유행했던 조선시대에 새롭게 등장해야만 했던 직업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한글 소설들을 실감 나게 읽어주는 낭독 전문가 ‘전기수’입니다. 한글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은 전기수를 통해서 소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풍속화의 대가인 단원 김홍도의 그림 ‘담배 썰기’에서도 전기수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전기수는 흰 두루마기를 입고 정자관(조선시대에 유행한 관모로 갓을 쓰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실내에서 혹은 가정에서 사용함)을 쓰고 한 손에는 부채를, 다른 한 손에는 책을 지닌 모습을 했습니다. 전기수는 자잣거리나 큰 장터 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에서 아주 묘한 기술, 즉 ‘요전법’을 써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가장 절박하게 돌아갈 때 읽어주기를 갑자기 정지하는 ‘침묵’이라는 수법을 이용하여 청중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다음 내용을 몹시 듣고 싶어서 전기수에게 계속 읽어달라고 돈을 던졌던 겁니다. 그렇게 전기수는 청중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사로잡으며 돈을 벌었습니다. 반면 전기수처럼 책 읽어주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책비'라고 불렀습니다. 책비들의 고객은 주로 부잣집이나 사대부 안방마님들이었는데, 등장인물에 맞는 다양한 목소리로 소설을 읽어주며 그녀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책을 읽어주기 전에 '짠보(울보의 사투리)'라는 수건을 옆에 두고 눈물이 나올 때마다 사용한 수건의 숫자가 많을수록 돈을 더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전기수는 연기력이 뛰어나 다양한 표정과 몸짓으로, 각 등장인물에 따른 목소리로, 그리고 행동으로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소설을 읽어주면서 해설도 덧붙이고 청중과 서로 묻고 답하며 소통도 했다고 합니다. 좋은 일화는 아니지만 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얼마나 실감 나게 읽어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전기수가 소설 ‘임경업전’을 너무 실감 나게 낭독해주다가 김자겸이 누명을 씌워 임경업을 죽이는 대목에서, 낭독자 전기수를 진짜 김자점으로 착각하여 낭독을 듣던 한 청중이 그 전기수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기수는 소설에 빠져서 글공부를 해야 하는 선비들과 체통을 지켜야 하는 양반가 사대부 여성들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지탄받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학창 시절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다가 중간에 책을 덮지 못하고 몰래 계속 읽다가 부모님께 들통나 걱정 한 소리를 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어쨌든 낭독의 묘미를 전해준 전기수는 왕부터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독서문화의 붐을 일으켰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반상 제도의 사회 구조상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소설 낭독 전문가 '전기수'들은 1960년대 라디오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도 계속 활동을 하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70년대 텔레비전까지 보급되면서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전기수로부터 시작한 낭독은 현재 북 튜버, 팟캐스터, 오디오북 등 다양한 낭독 문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AI는 흉내 낼 수 없는 참 낭독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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